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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오년 동안거 해제법어

관리자 | 2015.03.27 17:02 | 조회 4206

 

갑오년 동안거 해제법어 

 

임제 선사의 깨달음

 


[상당하시어 주장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고,]
 
이 주장자 이 진리를 알면,
 

 

 千聖靈機不易親(천성영기불이친)이라
 龍生龍子莫因循(용생용자막인순)하라.
 眞際奪得蓮城壁(진제탈득연성벽)하니
 秦主相如摠喪身(진주상여총상신)이로다.
 

 

 일천 성인의 신령한 기틀도 쉽게 친하지 못한지라
 용이 용새끼를 낳는다고 따르지 말라.
 진제가 연성의 보배구슬을 빼앗아 가지니
 진나라 임금과 상여가 다 생명을 잃음이로다.
 
금일(今日)은 갑오년 동안거 해제일입니다. 이번 한 철도 산승이 반가운 소식을 기다렸지만 그 소식을 전해오는 이 없으니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수행자가 자기사(自己事)를 밝히지 못하였다면 어찌 해제가 있을 수 있으리오. 오직 각자 화두를 성성하게 들어서 일념이 지속되게끔 혼신의 노력을 다해야 합니다. 이번 생에 이 일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언제 다시 인간 몸을 받을지 알 수 없으며, 설사 받는다 한들 또다시 이 부처님 법을 만난다는 것은 참으로 희유한 일입니다. 그 가운데서도 부처님 가르침의 골수인 최상승의 견성법(見性法)을 만난다는 것은 가히 무량의 대복(大福)을 갖추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시간은 하루하루 죽음의 문턱을 향해 총알처럼 달려가고 있는데 천고에 만나기 힘든 생사요달(生死了達)의 견성법을 만났거늘, 시은(施恩)만 축내면서 산천초목이나 구경하러 다니고, 온갖 시비에 다 간섭하고, 망상과 게으름에 시간만 낭비하면 안 됩니다. 죽음의 문턱에 다다라서 땅을 치고 통곡하며 후회한들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죽음이 언제 눈앞에 닥쳐올지 모르는 것이니, 해제라는 생각일랑 지금 당장 내려놓고 정신을 바짝 차리고 화두를 참구해야 합니다.
“부모에게 이 몸 받기 전에 어떤 것이 참나던가?”
하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알고자 하는 간절한 의심으로 화두를 챙기되, 흐르는 물처럼 끊어지지 않도록 화두를 챙기고 의심을 쭈욱 밀어주기를 하루에도 천번 만번 반복해야 합니다. 그렇게 끊어짐 없이 간절히 화두를 챙기다 보면 문득 참의심이 돈발하여 발동이 걸리게 되는 때가 오는데, 그러면 화두 한 생각이 성성하게 냇물처럼 흐르게 됩니다.
화두 한 생각이 성성하게 흐르는 가운데 의심이 철두철미해야 되고, 의심이 간절한 가운데 화두가 분명해야 하는 것이니, 그렇게 흐르는 물과 같이 흘러가야 보는 것도 잊고 듣는 것도 잊어버려서 화두의심 한 생각에 푸욱 잠기게 되는 것입니다. 이 때가 모든 업이 다 멈추게 되는 때입니다. 그렇게 모든 의식이 다 없어져서 누가 봐도 마치 등신같이 되어 시절인연만 기다리게 되는데, 몇 달이고 몇 년이고 시간이 흐르고 흐르다가 홀연히 사물을 보는 찰나 소리를 듣는 찰나에 화두가 박살이 남과 동시에 자기의 참모습이 마침내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일천 성인(一千聖人)이 베풀어 놓은 수많은 법문들을 한 꼬챙이에 꿰어버리게 되니, 누가 어떠한 법문을 묻더라도 척척 바른 답을 내놓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점검하여 바른 답이 척척 나올 것 같으면 부처님의 살림살이를 온전히 다 알았다하여 인가(印可)하고 법을 부촉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견성(見性)’이라 하는 것으로 생사를 요달하여 영원토록 부처님의 진리의 낙을 누리면서 자유자재로 살게 되는 길입니다. 중생구제(衆生救濟)의 원력으로 다시 오고 싶으면 사바세계에 다시 오게 되고, 아니면 영원히 열반낙을 누리는 것이니, 역대 모든 부처님, 조사스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며 천상세계와 인간세계의 진리의 스승이 되는 것입니다.
이 같은 귀중한 법이 오직 이 문중에만 있음이요, 모든 분들이 다겁의 세월 속에 드디어 만난 것이니, 해제라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시간만 허송하지 마시고, 조금이라도 젊고 힘 있을 때 혼신의 정력을 쏟아 이 일을 마쳐 다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사바의 온갖 고통에서 벗어나 하루에도 천만금의 시은(施恩)도 능히 녹이고 소화시킬 수 있게 됨이요, 역대 불조(佛祖)의 큰 은혜를 갚아 다하는 것입니다. 모든 출가자 재가불자 한 분 한 분이 이처럼 자기사를 마친 대장부(大丈夫)가 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그러면 어떠한 분들이 이와 같은 길을 걸어가셨는지 모범이 되는 선지식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선종(禪宗)을 근본으로 하고 있는 우리 조계종은 태고보우(太古普愚) 선사께서 중국의 임제종(臨濟宗)에서 정법맥(正法脈)을 이어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스님네가 바로 임제종(臨濟宗)의 아손인 것이며, 임제(臨濟) 선사의 가풍(家風)을 잇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당대에 중국 천하를 덮었던 임제 선사는 얼마나 위대한 분이셨는가?

임제 선사는 황벽(黃蘗) 선사의 상수제자(上首弟子)로서 부처님의 심인법(心印法)을 이으신 38대 조사입니다. 출가하여 경(經)과 율(律)을 배워 위의를 원만히 갖추었으나, 마음에 답답함을 떨칠 수 없다가 하루는 생각하기를,
“경과 율은 세상 사람들을 구제하는 약방문에 불과한데, 경전 밖에 따로 전하는 뜻은 무엇이란 말인가!” 하고 탄식하고는, 걸망을 짊어지고 곧장 황벽 선사를 찾아갔습니다.
황벽 선사 회상(會上)에 이르러 짐을 풀고는, 자기사를 밝히는 이 일 말고는 일체 다른 생각을 내지 않고 오로지 참선정진만 하였습니다. 당시 황벽 선사 회상에서 유나(維那) 소임을 맡고 있던 목주(睦州) 스님이, 임제 스님이 일체 흔들림 없이 3년여 동안 일여하게 정진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다가 하루는 황벽 조실스님을 찾아가 말씀드렸습니다. 
“조실스님, 우리 회중(會中)에 큰 인재가 하나 와서 있는데, 장차 큰 산마루에 큰 정자나무가 되어 천하 사람들을 시원한 그늘에 쉬어가게 할 것입니다. 그러니 조실스님께서 잘 경책을 내려주십시오.”
이렇게 임제 스님을 평하여 지도해 주실 것을 간청하니, 조실스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 이미 알고 있었네.”
“그러면 내일 아침 공양 끝에 그 수좌를 조실방으로 보내 진리를 묻게 하겠습니다.”
그러고 나서는 유나스님이 곧장 임제 스님을 불러서 물었습니다.
“그대가 이 회상에서 정진을 한 지 얼마나 되었던고?”
“3년 되었습니다.”
“그러면 조실스님을 몇 번이나 친견했는고?”
“한 번도 단독으로 친견한 바가 없습니다.”
그러자 유나스님이 임제 스님에게 권하기를,
“그러면 내일 아침공양 후에 가서 친견토록 하게.” 하니, 임제 스님이 다시 묻기를,
“그러면 어떻게 친견해야 됩니까?” 하니
“불법(佛法)의 밝고 밝은 진리를 묻게.” 하셨습니다.
이에 임제 스님이 순수히 그대로 받아들여서 뒷날 아침공양 끝에 조실방을 찾아가 예 삼배를 올리고는,
“어떠한 것이 부처님의 큰 밝고 밝은 진리입니까?” 하니, 물음이 떨어지자마자 조실스님이 주장자로 이십 봉을 내리 갈기셨습니다. 이십 주장자를 맞으니 이 몸이 다 무너진듯하여 간신히 기어 나와 간병실(看病室)에 쉬고 있는데, 유나스님이 찾아와서 물었습니다.
“갔다 왔는가?”
“예, 다녀왔습니다. 스님이 시킨 대로 불법의 적적대의(的的大義)를 여쭈었는데, 이십 봉을 내리 갈겨서 내 몸이 아닙니다. 어찌해야 하겠습니까?”
“대도(大道)를 위해서는 이 몸을 잊어야 하네, 몸을 추슬러서 내일 다시 찾아가 묻도록 하게.”
유나스님이 이렇게 간곡히 타이르니, 그 순수한 마음가짐에서
“예, 그리 하겠습니다.” 하고는, 다음날 가서 또 종전과 같이 불법의 적적대의를 물었습니다. 그런데 말 떨어지자마자 조실스님이 또 아무 말도 않으시고 곧장 이십 주장자를 때리시는데, 어제 맞은 이십 봉에 또 이십 봉을 맞으니 전신이 무너진데 더 무너져서 도저히 몸을 가눌 그러한 여력이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조실방에서 간신히 기어 나와 간병실에 쉬고 있으니, 유나스님이 또 찾아왔습니다.
“어제 이십 봉을 맞고 오늘 또 이십 봉을 맞으니 제 몸이 아닙니다.”
“이 대도를 깨닫기 위해서는 이 몸뚱이를 헌 신짝처럼 버려야 하네. 큰 용기를 내서 한 번 더 가게.”
유나스님이 다시금 찾아와 이렇게 간곡히 타이르니, 여기에 감화를 받아 다시 용맹심을 내어,
“네 가겠습니다.” 하고는 다음날 또다시 조실스님을 찾아갔습니다.
“어떠한 것이 부처님의 큰 밝고 밝은 진리입니까?”
역시 말 떨어지자마자 조실스님이 또다시 이십 봉을 내리 갈기셨습니다. 이렇게 사흘 동안 육십 봉을 맞으니, 도저히 몸을 추스를 수가 없었습니다. 근근이 기어 나와 간병실에 쉬고 있는데, 또다시 유나스님이 찾아와서 물었습니다.
“다녀왔는가?”
“예, 다녀왔습니다. 세 번을 찾아가서 육십 봉을 맞았는데 전신이 부서지고 망가져서 이제는 움직일 여력조차 없게 되었습니다. 제가 너무도 부족함을 느껴 한탄만 나옵니다. 저는 아무래도 선지식의 가르침을 제대로 다 받아들일만한 인연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이제는 하직하고 떠나는 것이 마땅한 것 같습니다.”
“그래 다른 데로 갈 뜻이 있거든, 당분간 몸을 잘 추스르고 갈 때는 꼭 조실스님께 하직인사를 하고 가게.”
유나스님이 간곡히 정녕으로 일러주는 데에 감화하여 며칠 조리를 잘 하고는 조실스님을 친견하여 하직인사를 올렸습니다. 그러니 황벽 조실스님께서 물으셨습니다.
“그대가 어디로 가려는고?”
“갈 곳이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조실스님께서 일러주시면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면 고안 강변에 대우(大愚) 선사를 찾아가거라.”
그리하여 몇 달을 걸어 대우 선사를 찾아가는데, 걸음걸음마다 한 생각에 사무쳐 마치 등신과 같았습니다.
‘불법의 큰 뜻을 물었는데, 왜 황벽 선사께서는 말 떨어지자마자 이십 봉씩 세 번을 때렸을까? 때리는 뜻이 과연 어디에 있는고?’ 이 간절한 한 생각이 화두가 되어 의심으로 꽉 찼던 것입니다.
그렇게 화두일념(話頭一念)에 빠진 채 대우 선사 회상에 이르러 예 삼배를 올리니, 대우 선사께서 물으셨습니다.
“그대가 어디에서 오는고?”
“황벽 선사 회상에서 왔습니다.”
“황벽이 평소에 어떻게 지도하던고?”
대우 선사의 물음에 임제 스님이 말하기를,
“제가 불법의 밝고 밝은 진리를 물었는데, 황벽 선사께서 세 번이나 이십 봉씩 때려서 전신이 무너진 것 같아 간신히 조리를 하고 나왔습니다. 헌데 제게 무슨 허물이 있어서 이렇게 육십 봉을 때리신 것입니까?” 하니, 대우 선사께서 크게 호통을 치셨습니다.
“이 오줌싸개 어린아이 같은 놈이 무엇이라고 지껄이는고? 황벽이 혼신의 정력을 쏟아 잘 가르쳤구나.”
그러고는 “하하하!” 하고 크게 웃으셨습니다. 여기에서 임제 스님이 홀연히 활연대오(豁然大悟)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곧장 일성(一聲)을 토해내기를,
“황벽의 불법이 별 것이 아니구나!”
그러자 대우 선사께서
“이 오줌싸개가 방금 전에는 허물이 있느니 없느니 하더니만, 이제 와서는 무슨 소리를 하느냐?” 하고 다시 호통을 치셨습니다. 그러니 임제 스님이 대우 선사의 옆구리를 세 번 쥐어박았습니다. 이에 대우 선사께서 임제 스님을 밀어젖히면서 말씀하시기를,
“이 일은 나와 관계된 일이 아니다. 너의 스승은 황벽 선사이니 다시 찾아가거라.” 하셨습니다.
임제 스님이 그 걸음으로 돌아와서 다시 20여 년을 황벽 선사를 모시고 연마하였습니다.

 

하루는 임제 스님이 산문(山門) 앞에 소나무를 심고 있으니, 황벽 선사께서 물으셨습니다.
“그대가 소나무를 심어서 무엇 하려는고?”
“한 그루는 산문 앞에 경치를 돋우기 위해 심고, 한 그루는 후래에 표방을 남기기 위해서 심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고는 괭이로 땅을 세 번 쪼니, 황벽 선사께서 말씀하시기를,
“비록 그렇기는 하나, 너는 이미 내 주장자를 삼십 방 맞았다.”
하셨습니다. 이에 임제 스님이 다시 괭이로 땅을 세 번 쪼고는,
“허허허!” 하고 허허성(噓噓聲)을 하니, 황벽 선사께서
“나의 선풍(禪風)이 너로 좇아 크게 흥하리라.” 하셨습니다.
 

 

대중은 임제 스님이 ‘허허’라고 웃는 뜻을 바로 보는 눈이 있어야 황벽 선사와 임제 선사를 바로 보게 될 것입니다. 

당시 회상을 열어 천오백 대중을 지도하고 계시던 위산(潙山) 선사께서 이 말을 전해 들으시고는, 동양의 소석가(小釋迦)라고 불리는 제자 앙산(仰山) 스님을 불러 물으셨습니다.
“황벽이 임제의 법 쓰는 것을 보고 ‘아종(我宗)이 이후에 크게 흥한다’ 했는데, 임제 당대에 속한 것인가, 아니면 훗날까지 본 것이냐, 그대는 연대를 얼마나 보는고?”
이에 제자 앙산 스님이 말하기를,
“연대가 하도 멀어서 들어 말하고자 않습니다.” 하였습니다.
“내가 알고자 하네. 한번 말해보게.”
스승이 간곡히 부탁하니, 앙산 스님이
“令行吳越(령행오월)이라가 遇風卽止(우풍즉지)라. 
임제의 영이 오나라와 월나라 땅을 행하다가 바람을 만난 즉은 곧 그칩니다.”
하고는 삼백 년 후까지 예언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앙산 선사가 ‘바람을 만난 즉 그친다’ 한 것은, 바로 풍혈(風穴) 선사를 이르는 말이었습니다. 풍혈 선사는 임제의 정맥을 이으신 분으로 회상을 열어 20여 년 동안 심혈을 기울여서 수백 명의 대중을 지도하였는데, 늦도록 한 개 반(半) 개의 도인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하루는 간밤에 매가 한 마리가 날아서 당신 방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었는데, 날이 새니 납자(衲子) 하나가 바랑을 짊어지고 찾아왔습니다. 납자를 접견하고 거량을 해 보니 흡족하게 상통하므로 제자로 삼고 심인법을 전하였는데 이후로 200여 년 간 선풍이 크게 흥하지 않았으니 과연 300년 후까지 바르게 예언하신 것입니다.
 

훗날 임제 스님이 20년 간 사자(獅子)의 모든 조아(爪牙)를 갖추어서 다른 처소로 가기 위해 하직인사를 올리니, 황벽 선사께서 법을 전하시기 위해
“시자야, 주장자(拄杖子)와 불자(拂子)를 가져오너라.” 하시니, 임제 스님이
“시자야, 불[火]을 가져오너라.” 하였습니다. 이에 황벽 선사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대가 뒷날 앉은 채로 천하 사람들의 혀끝을 끊을 것이니라.” 하시고는 심인법(心印法)을 전하셨습니다.

 

법을 부치기 위해서 주장자와 불자를 가져오라 하는데, 왜 불을 가져오라 하느냐? 이처럼 스승을 능가하는 당당하고 빠른 기봉을 갖추어야 법을 전해 받을 자격이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일생토록 진리의 법을 잘 펴시던 임제 선사께서는 특별한 지병이 없으셨지만 열반에 드실 때가 되니 옷을 단정히 입으시고는 제자 삼성(三聖) 스님을 불러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너에게 법을 전하노니, 내가 가고 난 다음에 나의 정법안장(正法眼藏)이 끊어지지 않도록 하라.” 이렇게 말씀하시고는 다시 물으시기를,
“그러면 장차 너에게 불법의 대의(大義)를 물어 온다면 그때는 어떻게 제접하려는고?”
이에 삼성 스님이
“억[喝]!” 하고 벽력같은 할을 하니, 임제 선사께서 말씀하시기를,
“나의 정법안장이 이 눈먼 노새한태 절단남을 누가 알겠는고.” 하시고는 단정히 앉아 열반에 드시었습니다.
 

 

금일 해제를 맞는 모든 대중은 임제 선사의 오도(悟道) 과정을 훌륭한 귀감으로 삼아야할 것입니다. 근래에 도를 닦는 이들이 해제하면 행각한다 하여 돌아다니는 것을 미덕으로 삼고 있지만, 이는 결코 바른 자세가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도를 이루고자 한다면 무엇보다도 선지식이 가장 중요한 것이니, 먼저 눈 밝은 선지식을 찾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대도를 성취하기 전에는 절대로 바랑을 짊어지지 않겠다는 철두철미한 신심으로 빈틈없는 정진을 이어가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다가오는 5월 16일은 1600년 한국불교 역사상 가장 큰 행사인 ‘세계 간화선무차대회’가 열리는 날입니다. 올해 종단에서는 ‘간화선(看話禪)의 세계화’라는 기치를 내 걸었습니다. 그래서 ‘세계간화선무차대회’가 세계 각국의 300여 분의 종정스님과 승왕스님들이 함께 자리하고, 세계 각 종교계 최고 지도자분들도 참석하는 성대한 대법회가 될 수 있도록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간화선을 세계에 선양하고 한국불교의 저력을 만방에 알리는 더없이 훌륭한 이 대법회에 사부대중들께서는 큰 신심으로 동참해 주시기 바라며, 특히 제방의 모든 선객(禪客) 스님들께서는 불은(佛恩)에 보답하기에 더없는 자리인 만큼 빠짐없이 동참하여 한 분 한 분이 행사를 증명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필경(畢竟)에 시회대중은 황벽, 임제, 위산, 앙산 네 분의 살림살이를 아시겠습니까? 

  

虛空落地時(허공낙지시)에 向汝道(향여도)리라. 


 

허공이 땅에 떨어질 때에 그대를 위해 일러주리라. 

 

[주장자로 법상을 한 번 치시고 하좌하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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