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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 2565년 하안거 해제 법어

관리자 | 2021.08.22 15:53 | 조회 562







佛紀 2565年 辛丑年 夏安居

大韓佛敎曹溪宗 宗正 解制法語


[상당(上堂)하시어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고 이르시기를,]



자개주장자(這箇拄杖子)는

 삼세불조명근(三世佛祖命根)이며열성겸추(列聖鉗鎚)라.

 환두이성(換斗移星)하고 경천동지(驚天動地)로다.

 십마인(什麽人) 임마래(恁麽來)오?

 시거간(試擧看)하라.


이 주장자는

삼세불조의 생명의 뿌리이며 열성의 불집게와 쇠망치라.

북두를 잡아 별을 옮기고 하늘이 놀라고 땅이 진동함이로다.

어떤 사람이 이렇게 오는 것인고?

시험에 드는 것을 보라.



금일(今日)은 하안거(夏安居) 해제일(解制日)입니다.

결제(結制)와 반살림을 지나 어언간(於焉間)에 해제일이 도래하니,

이처럼 시간(時間)은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신속(迅速)하니

결제, 해제가 반복되는 일상(日常)이 되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금일은 있음이나 내일은 알 수 없으니, 금생에 대오견성(大悟見性) 하지

못한다면 어느 생(生)에 부처님 심인법(心印法)을 만난다고 기약(期約)하겠는가.


이 공부는 결제해제에 불상관(不相關)하고 일생을 걸고 신명(身命)을 바쳐 “금생에 기필코 이 일을 해결하겠다”는 간절(懇切)한 각오로 화두(話頭)를 참구(參究)하면 누구라도 진리(眞理)의 문에 들어갈 수 있음이라.

화두(話頭)가 있는 이는 각자의 화두를 챙기되,

화두가 없는 이는“부모에게 나기 전에 어떤 것이 참나인가?”하고

이 화두를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에 챙기고 의심하여 일념(一念)이 지속되도록 정진(精進)하고 또 정진할지어다.



진리의 문(門)을 활짝 여니

범부(凡夫)와 성인(聖人)이 한집에서 같이 살고 있고,

진리의 문(門)을 닫으니

북쪽에는 백두산(白頭山)이요, 남쪽에는 한라산(漢拏山)이로다.


지금 이 자리는 범부(凡夫)와 도인(道人)을 가리는 선불장(選佛場)이다.

누구든지 꾸준히 갈고 닦아 자신의 본분사(本分事)를 뚜렷이 밝혀낼 것 같으면, 도인과 범부를 가리는 이 관문(關門)을 통과하여 불법 정안(正眼)을 인증(印證)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 관문을 통과하지 않고 자기 혼자서 깨달아 알았다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혼자서 스스로 '알았다'고하면 모두 사견(邪見)에 빠지고 만다.


그러므로 먼저 깨달으신 선지식(善知識)을 찾아가서 자신이 깨달은 경지를 점검(點檢)받아야만 그 진위(眞僞)를 가릴 수가 있는 법이다.


부처님께서도 “스승 없이 깨달은 자(者)는 모두 천마(天魔)이고 외도(外道)이다.”라고 하셨던 것이다. 그래서 제불제조(諸佛諸祖)께서 인증(印證)의 가풍(家風)을 확고히 세워놓으신 것이다.



중국의 당나라 시대에 위대한 선지식(善知識)은 할(喝)로 유명한 임제(臨濟)선사와 봉(棒)으로 유명한 덕산(德山)선사로 상징(象徵)된다.


그 덕산 선사의 제자로 암두(巖頭)선사와 설봉(雪峰)선사를 두었다.


암두선사께서 불법사태(佛法沙汰)를 당하여 속복(俗服)을 입고 머리를 기르고 뱃사공을 하면서 사셨던 적이 있었다.


양쪽 강둑에 각각 목판(木板)을 하나씩 걸어놓고 강을 건너고자 하는 사람이 와서 그 목판을 치면, 초막에서 노를 잡고 춤을 추며 나와서 강을 건네주곤 하였다.


어느 날 한 보살이 아이를 업고 와서 목판을 쳤다.

암두 선사께서 “누구요?”하고 나와서 여느 때처럼 춤추며 와서 배를

대니, 보살이 갑자기 아이의 멱살을 잡아 쳐들고서 물었다.


“노를 잡고 춤추는 것은 묻지 아니하거니와, 이 아이가 어디로부터 왔는가를 일러 보시오.”


암두 선사께서는 말없이 노를 가지고 뱃전을 세 번 쳤다.


그러자 보살은, “내가 아이를 여섯이나 낳았어도 지금까지 아는 자를 만나지 못했는데, 일곱 번째 아이를 낳고 만난 이 자도 역시 신통치 못하구나.”

하면서 쳐들고 있던 아이를 강 가운데로 던져 버렸다.


그런 후로 암두 선사께서는 뱃사공 일을 걷어치워 버리셨다.


이것이 가장 알기 어려운 법문이다.

보살이 귀한 아이를 강에다 던져버린 까닭은 무엇이며,

또 어떻게 답을 했어야 그 아이를 살릴 수 있었겠는가?


그러면, 암두 선사께서 뱃전을 세 번 친 그 답이 잘못된 것인가?

아이를 강물에 던진 보살은 어떠한 용심(用心)을 한 것인가?


이러한 관문을 능히 통과해야만 과거장(科擧場)의 합격자로 인증(印證)을

받아서 비로소 만인에게 불법의 진리를 펼 수 있는 사표(師表)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대중은 암두 선사와 보살을 알겠는가?

[대중의 답이 없자 스스로 이르시기를,]


兩個惡賊相逢(양개악적상봉)에

各設陷虎之機(각설함호지기)로다

사나운 두 도적이 서로 만남에

각각 범 잡는 함정을 베풂이로다.



설봉(雪峰) 선사가 암자에 주석하고 계실 때에, 어떤 수좌 두 사람이 와서 예배하거늘, 설봉 선사가 보고 암자 문을 열고 나서서 말하되,

“이것이 무엇인고?” 하니,


수좌도 역시 말하기를, “이것이 무엇입니까?”함에, 설봉 선사가 고개를 숙이고 암자로 돌아갔다.


그 수좌가 나중에 암두(巖頭) 선사에게 갔더니,

암두 선사가 “어디에서 오는가?”하니,

“영남(嶺南)에서 옵니다.”


암두 선사가 묻되,

“설봉 선사를 보았느냐?”하니,

“설봉 선사의 처소를 다녀오는 길입니다.”


암두 선사가 다시, “무어라 하던가?”함에,

한 수좌가 앞의 이야기를 했더니,


암두 선사가 묻되, “달리 무어라 하던가?”


그 수좌가 대답하기를,

“그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이고 암자로 돌아갔습니다.”하였다.


암두 선사가 말하기를,

 “슬프도다! 내가 애초에 그를 향해 말후구(末後句)를 일러주었던들, 천하 사람이 설봉 노사를 어찌하지 못했으리라.”하였다.


그 수좌가 여름이 끝날 무렵에 다시 이 이야기를 들어 이익(利益)을 청하니

암두 선사가 말하되, “왜 진작 묻지 않았는가?”

그 수좌가 대답하되, “용이(容易)하지 못했습니다.”하니,


암두 선사가 말하기를,

나와 설봉은 비록 삶[生]은 같이 했으나 죽음은 같이 하지 못함이로다.

말후구를 알고자 할진댄, “다만 이 것이니라.”하였다.


이 법은 천하 선지식들도 알기가 어렵다.

산승이 두 팔을 걷어붙이고, 설봉, 암두 두 분의 살림살이를 점검해서 제방(諸方)에 일임하노라.


대중(大衆)은 설봉(雪峰)선사가 머리를 숙이고 암자로 돌아간 것을 알겠는가?

 설봉(雪峰)은 득편의시(得便宜時)에 실편의(失便宜)로다.

 설봉 선사는 편의함을 얻은 때에 편의함을 잃었도다.


암두(巖頭) 선사를 알겠는가?

 암두 선사는 분명히 백염적(白拈賊)이로다.

 비록 그러하나 말후구는 일렀으되, 다만 팔부(八部) 밖에 

이르지 못함이로다.


어떻게 일러야만 십부(十部)를 일러갈고?

[양구(良久) 하신 후 이르시되,]


 운재영두한불철(雲在嶺頭閑不撤)

 유수간하태망생(流水澗下太忙生)

 구름은 산마루에 한가로이 떠있는데

 흐르는 물은 개울 아래에서 유달리도 바쁘더라.



[주장자로 법상(法床)을 한번 치고 하좌(下座) 하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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